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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 - 토머스 조이너

마이토 2014. 9. 28. 12:30

원제는 Why people die by suicide

아마 교보문고에서 파격가 세일 할 때 잠깐 정신을 놓고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집어 넣었다가 결제 직전에 극적으로 정신을 차려서 주문하지 않고 그냥 읽고싶은 책 목록으로 옮겼던 책이었던것 같다.

읽기전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내가 가진 10대 의문 중 하나인 '동물도 자살 하는가?'와 비교해서 인간의 자살을 설명 한 책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잠깐 나온다. 결론적으로 차이를 내가 이해 할 수 있게 해주진는 않았다.

이 책은 쉽게 풀어쓴 논문 같은 느낌이어서 안그래도 매일 읽는 텍스트는 논문인데, 또 논문을??!! 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있었는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이었다. 덕분에 도서관에 연체가 15일이나 되었다. 15일 연체 했는데 반납독촉 전화를 전방위적으로 하셔서.. 원래 도서관 규정이 15일이면 그렇게 연락을 하시는건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제목이 제목인지라 걱정이 되셔서 그랬나 싶기도 하고.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을 자세하게 제시할때 습득하는 하면 안되는 행동의 방법 (예를들어 볼마우스의 볼을 빼서 갖고 놀다가 버린다. 나는 이걸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수업 첫 시간 남자중학교에서 처음 전근오신 선생님이 우리에게 경고를 하셨고.... 나는 완전 번뜩이는 아이디어다!! 라고 하며 볼을 빼서 가졌다.)을 알려주는 것과 같은 책이다. 별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겐 별 내용이 아니고, 간절히 어떤 방법을 강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지도서가 되지 않을까. 

"거의 300년 전, 볼테르는 카토의 자살을 묘사하면서 이 책이 제시하는 이론모델의 측면들을 미리 보여주었다. 볼테르의 언명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자살행동에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효능감과 유대감이란 면에서 살아야 할 의미를 찾기 못하는 사람만이 자연 최강의 본능을 뛰어넘을 수 있다.

 이 책은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치명적인 자해 능력을 습득하도록 하고 또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도록 하는 그 비극적인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p273-274

 

Commit a suicide는 쉽게 입밖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자살이라는 단어는 목을 울려서 소리내어 말하기가 아직은 꺼려지는 단어인것 같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임을 지금 알아차렸음.

 

초반에 심리통이라는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이것이 나의 끔찍함과 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검색을 했는데 심리통이라 검색을 하면 이 책이 다시 검색되는 걸로 봐선 심리학에서 흔히 사용 되는 용어는 아닌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심리상담을 받을 때 만약 그 시기를 놓쳤거나,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면 지금쯤 또 다른 선택지를 선택한 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어떤 돌아 올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았을까. 그게 좋은건지 이게 좋은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선택, 무슨 생각으로 내발로 걸어가서 상담센터를 찾았는지는 기억이 잘 안난다. 그맘때의 기록도 거의 없다. 가능하다면 그때의 녹취록을 보고싶다. 영남대에 고마운점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반년넘게 매주 심리상담의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

 

한 100페이지 까지는 새로운 내용이고, 그 뒤로는 반복해서 앞에서 한 이이기를 풀어낸다. 그러니까 안 읽어도 괜찮은 책인데, 굳이 읽으려면 100페이지까지는 읽어 볼 만 함. 그 뒤로는 그 시간에 영화를 한편 보는게 훨씬 좋다.

 

영화나 보러 가야겠다.

 

아래는 이 책을 한참 읽을때 옮겨 적은 책의 내용과 생각. 지금은 또 생각이 바뀐것 같다(=별 생각이 없다.)

p49
20세기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드디어 납득할 만한 새로운 자살이론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가장 뛰어난 이론가 중 하나로 에드위 슈나이드먼을 들 수 있다. 그는 심리적 욕구의 본질과 그것이 좌절될 때 발생하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었던 헤리 머레이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그의 자살관 역시 좌절된 심리적 욕구를 중심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자살행동에 관한 이론모델의 개발에 있어 이 같은 접근법을 전반적으로 차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슈나이드먼은 "거의 모든경우 자살은 특정 종류의 고통, 그러니까 내가 심리통(psyache)이라고 부르는 심리적 고통의 결과로 발생한다. 또한 이 심리통은 좌절되거나 왜곡된 심리적 욕구에서 유래한다." 라고 썼다. 슈나이드먼은 심리통(참을 수 없는 강도에 이른 심리적, 감정적 고통 전반을 의미한다)을 자살의 근본적 원인으로 본다. 다시 말해서 무엇이 됐든 위험요소는 고조되는 심리통을 통해 작동하고, 이어서 자살 위험을 증가 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이 전적으로 인류에게만 나타나는 고유 현상이라는 슈나이드먼과 설리번의 견해는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 동물 자살행동의 가장 명백한 사례는 곤충들, 그리고 조류에게서도 엿볼 수 있는 "적응적 자살"이라는 현상이 될 것이다. 진딧물과 진짓물에 기생하는 특정 말벌에 대한 연구가 있다. 말벌 어미가 숙주 진짓물 안에 사나란하면 말벌 유충이 딘짓물의 몸 속에서 내장을 파먹으며 자란다. 성충이 된 말벌은 진딧물의 등을 씹어 구멍을 내고 빠져 나온다. 이제 이 기생 말벌들은 진딧ㄷ물 군락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기억하겠지만 데카탄자로는 번식 가망이 희박하며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친족에게 짐이 되는 나머지 그들 모두의 번식 가능성을 끌어내리는 사람은 자기희생을 통해 생존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는 학설을 세웠다. 말벌의 기생 숙주가 된 진딧물이 바로 그런 사람과 같은 처지로 이해 될 수 있다.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에 번식 가망은 희박하고, 기생 말벌이 살아남아 다른 진딧물조차 감염시킬 것이ㄹ므로 친족 진딧물들에게까지 잠재적으로 짐이 되는 것이다. 초기에 기생 숙주가 되어 번식을 할 수 없게 된 진딧물들은 그래서"진딧물 자살" 행위에 빈번히 가담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 들은 고의적으로 자신이 기생하던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져 무당벌레 등 천적들에게 잡아 먹힌다.
중략
이런 종류의 자기희생은 뒤르켐이 집단의 이익을 위한 자기희생이라고 규정한 이타적 자살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그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본 것이지만). 중요한 차이점이라면 적응적 자살은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p140

일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합리적 자살을 지지했으나 그들 자신도 소속욕구를 극복하지 못했다. 세네타(Seneca)의 말이다.

  삶이 그대를 만족시키는가? 그러면 살아라. 아닌가? 그러면 본래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라. 커다란 보상은 필요없다. 작은 상처만으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삶의 요구에 구속되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삶의 요구라는 건 없다. 신들에게 감사컨대, 그 누구도 살기를 강요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중병에 걸려 자살을 원했음에도 자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서 차마 결행하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의 자살을 막은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살을 쉬운 것으로 과소평가 했던 것 같다. "커다란 부상은 필요없다. 작은 상처만으로 자유를 획득 할 수 있다."는 말은 자살사망의 극단적인 어려움을 보여주는 2장의 증언들과 대조를 이룬다.) 세네카는 자살로 목숨을 끊었으나, 그것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p146

 

느낌인데,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살안에서 살고자하는 의지를 찾는것 같다. 죽음으로서 삶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인데, 그 마무리라는게 자살을 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될대로 되라지 뭐 정도이지만 자살을 하는 사람의입장에선 자신의 일신을 처리하고 간다. 뭐 그런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