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것/책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 지넷 윈터슨

마이토 2014. 11. 29. 06:20

원제: Oranges are not the only fruit / Jeanette Winterson

 

원래 다른 책 빌리려 했는데, 그책은 분명 비치 도서 였지만, 그 자리엔 없었다. 오랜 시간 없었는지 그 책을 위한 공간 조차 없었다. 아마 분실서 일것 같지만 , 굳이 나서서 신고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책을 검색하면서 이책을 찾았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마음이 아프다. 그중 특히 아련한 부분을 적어본다. 오렌지만이 과일이 아니듯이, 이별은 모두 마음이 아프다.

 

p. 204

"안녕."

그녀였다.

"들어가도 돼?"

 나는 멜라니가 들어오도록 비켜 주었다. 그녀는 살이 좀 올랐고 상당히 평온해 보였다. 거의 30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수업, 친구, 휴가 계획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녀와 산책이라도 가고 싶었느냐고?

 전혀.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곧 멀리 남쪽으로 이사할 것이라고 했다. 멜라니가 전력소 뒤에 사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내가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을까?

 아니.

 마침내 멜라니는 장갑과 베레모를 쓴 뒤 아주 가볍게 나에게 작별 키스를 했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자 나는 무릎을 턱 아래로 모으고, 주님께 나를 자유롭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고맙게도 그때는 바쁜 시기였다. 그다음 날 구세군이 허락한다면 교회 신도 모두가 시 공회당에서 캐럴을 부를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멋진 시간을 보냈다. 메이가 탬버린에 달 새 리본을 사 왔고, 어머니는 기독교인 낚시 협회가 빌려 준 커다란 녹색 우산 밑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p. 209

 멜라니가 얼굴을 붉혔다. 나는 멜라니건 다른 그 누구에게건 케이티와 나 사이의 일을 말할 의도가 없었다. 본질적으로 은밀하다거나 죄짓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일을 밝히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충분히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멜라니는 다음날 떠났다. 그 남자와, 그리고 그 남자의 부모님과 지내기 위해. 두 사람이 그 남자의 흉물스러운 강철 오토바이에 타고 떠나기 바로 직전, 그 남자는 나의 팔을 토닥이며 자신도 알고 있으며 우리 둘 모두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 침을 모두 모아 발사하는 것. 그리고 난 그렇게 했다.

 

p. 280

 다진 고기와 양파를 샀고, 트리켓 스낵바가 아직도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팔고 있음을 확인했다. 베티는 여전히 테이프로 고정한 안경을 끼고 있었다. 모나가 안경 위로 쇠고기 버거를 떨어뜨린 그 해부터 지금껏 내내 말이다. 베티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나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난 내가 도대체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 맞는지 의아해졌다. 어머니는 예전과 똑같이 나를 대했다. 내가 없었던 것을 몰랐나? 내가 떠났던 까닭을 기억하고는 있나? 나에게 한 가지 이론이 있다. 당신이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뒤에 남은 당신의 일부가 당신이 누릴 수도 있었을 다른 삶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여 그의 일부가 자신의 몸 외부에서 새로이 자신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환상이 아니다. 도예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이를 자기로 만들고, 자기는 도예가를 넘어서서 자신만의 별개의 삶으로 존재한다. 도예가는 자신의 사고를 보여주기 위해 물리적 실체를 이용한다. 만약 내가 나의 사고를 보여주기 위해 형이상학적 실체를 이용한다면, 나는 한번에 여러 곳에 존재하여 수많은 것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도예가와 그의 자기가 다른 장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나는 이곳에 결코 있지 않았으나 나의 모든 부분들이 내가 한, 그리고 하지 않은 모든 선택들과 함꼐 흐르며 하순간 서로 스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내가 여전히 북부에 사는 전도사 이면서 동시에 달아난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잠시 동안 이 두 자아가 융합되었을 것이다. 시간에 있어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후퇴하지도 않았다. 시간을 가로 질러 나였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간 것이다.

 "여보세요, 당신 들고 있는 차를 흘렸잖아요."

베티가 분개하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돈을 두 배로 지불하고 나왔다.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언덕으로 올라갔다. 날씨가 이러니 언덕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아직 여기 살았다면 나도 따뜻한 집에 있었을 것이다. 바보짓은 방문객들의 특권이다.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거기에서 원을 그리며 내리는 눈이 이 소도시를 덮고 지워 버리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모든 검은 부분이 지워졌다. 난 아주 인상적인 설교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죄가 구름처럼 내 위에 걸려 있습니다. 그분꼐서 이 죄를 지우시고 나를 자유롭게 풀어 주셨습니다......."

 이런 설교. 그러나 천국은 우주비행사들로 가득하고 주님은 권좌에서 타도된 이때, 신은 어디에 계신 걸까? 나는 신이 그립다.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과 함꼐하는 것이 그립다. 나는 아직도 신이 날 배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을 모시는 하인들의 배신. 그래, 그렇지만 하인들은 그들의 본성 자체로 배신하게 되어 있다. 나의 친구였던 신이 그립다. 난 신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이 감정적 역할 모델이라면 극소수의 인간관계만이 이에 견줄 수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언젠가는 이런 인간관계가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어렴풋한 감지가 나를 방황하도록, 땅과 하늘 사이의 균형을 찾아보도록 이끌었다. 만일 하인들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우리를 갈라놓지 않았다 해도 나는 실망했을지 모른다. 고급 은란 천을 걷어 보았다가 안에서 수프 한 그릇만을 발견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정착할 수 없다. 나는 누군가를, 죽을 때까지 날 사랑할 사나운 사람을 원한다. 사랑은 죽음만큼 강하고 영원하며 또 평생 나의 편일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그리고 나에 의해 파괴될 사람을 원한다. 세상엔 수많은 형태의 사랑과 애정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동안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함께 지내기도 한다. 이름을 주는 것은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이는 본질과 관련된 거싱며 힘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사나운 밤에 누가 당신을 집으로 부르겠는가? 당신의 이름을 아는 사람뿐이다. 낭만적 사랑은 싸구려 소설로 희석되어 수천 권 수만 권의 책으로 팔린다. 어딘가에서는 낭만적 사라잉 여전히 원서와 같은 석판에 적혀 있다. 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바다라도 건너고 뙤약볕 아래에서의 고생도 마다 않고 내가 가진 전부를 줄 것이다. 그러나 남자를 위해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은 파괴자가 되려고만 하지 않고 결코 파괴되지는 않으려 하니까. 그래서 남자들은 낭만적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리고 난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에 겁이 안다. 이 필요가 얼마나 거대한지, 얼마나 높은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뿐이다. 기름 한 방울의 원주를 알고 싶으면 송진가루를 이용하면 된다. 내가 찾은 것이 그것이다. 송진 가루 한 통, 그리고 이 가루를 나의 필요 위에 뿌릴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지 알아낼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 실험 결과를 자세히 써서 보여 줄 것이다. 필요가 자라는 것이라면 나는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것이다. 필요가 변하거나 사라지는 것일 때에도,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배신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러나 일상적으로 관계를 시작할 때 이를 구별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이 배신은 사람들이 자주 행하는 그런 배신이 아니다. 그래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여러 종류의 배신이 있지만 어디에서건 배신은 배신이다. 내가 말하는 배신이란 당신 편이라고 약속하고 다른 사람 편이 되는 것이다.

 채석장으로 기울어져 내려가는 언덕 옆쪽에 서 있었기 때문에 멜라니가 전에 살았떤 곳을 볼 수는 없었다. 집을 떠난 지 두 해가 지났을 때, 우연히 멜라니를 만났다. 그녀는 손수레를 밀고 있었다. 전에는 소가 된 것처럼 평온했다면 그때는 거의 식물이나 다름 없었다. 계속 그녀를 지켜보는 동안 나는 우리가 어떻게 친밀한 관계를 나누었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처음 나를 떠났을 때만 해도 패혈증에 거릴 것 같았다.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이제 그녀는 모든 것을 잊은 듯했다. 그 모습에 나는 그녀를 뒤흔들고 싶어졌다. 길 한가운데 서서 옷을 전부 벗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 몸 기억해?"

 시간은 위대한 둔화제다. 사람들은 잊고, 지겨워하고, 늙고, 떠난다. 그녀는 시간상 우리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은 일어날 수 업삳고 했다. 그러나 세월은 매듭으로 가득한 끈이다. 당시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를 존중하는 것, 매듭을 더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흔들기 위한 해먹이요, 놀기위한 게임이다. 고양이의 요람. 그녀는 그런 감정, 그녀가 한 때 내게 가졌던 감정은 죽었다고 했다. 죽은 것에는 유혹적인 면이 있다. 죽은 것은 함부로 다룰 수도, 바꿀 수도, 다시 채색할 수도 있다. 죽은 것은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웃었고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우리가 아주 다르게 이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다시 웃었다. 그러고는 내가 이해하는 식으로 보면 괜찮은 이야기가 될 것이며, 그녀의 견해로는 그저 역사, 그냥 사실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편지를 보관하지 않았기를, 어리석게 의미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마치 편지와 사진이 더 사실적이로 위험하다는 듯. 난 편지 없이도 지난 일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모호한 표정으로 날씨와 도로 공사, 치솟는 이유식 가격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민음사, 1판 2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