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것/책 2020

미루기의 천재들 - 앤드루 산텔라

마이토 2020. 4. 20. 03:02

원제는 Soon.

그러게 영어로 '미루다'는 단어가 한번에 안 떠올라서 원제를 찾아 봤는데 내가 자주 쓰는 단어인것 같다. 곧 보내줄게요, 곧 할게요, 곧 시작 할거에요 등등.


책을 잃는 동안 뼈를 너무 맞아서 감정 골절상에 진단서를 끊을 수 있다면 흔히 말하는 전치 52주는 나올 것 같았다. 일을 미루는 사람의 심리의 저 아래에 있는 깊은 내면을 글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걸 읽으면서 논문 쓰기를 미루고 있었다. 지금은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는데 그걸 미루면서 블로그를 쓰고 있다.


어릴때 부터 일을 미루는 수많은 사례로 보아서 나는 태생이 일을 미루는 타입임을 한번 더 확인 했다. 지난주도 사실 일주일전에 나온 과제를 하루만에 마무리 하느라 뇌가 하얗게 탄 기분이었음. 막 일을 미뤄서 생계가 위태해지는 일이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많은 기회를 날린건 사실이긴 하다. 그리고 결정적일때 생계가 위태해지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불안함도 있다. 시험공부도 미리 해 본적이 없었고, 대학교 과제도 미리 하지 않았으며, 이런 수많은 사례와 더불어 어릴때 흔히 하던 재능수학이나 장원한자를 한번도 매일매일 조금씩 한적이 없었다. 선생님이 가정방문 하는 날이 그걸 공부하는 날이었는데 그날은 학교 쉬는 시간에 놀지도 못하고 숙제를 하느라 아주 바빴다. 그러다가 공휴일이 끼어서 2주치를 해야 하는 날이면 정말... 똥줄 타게 하교하면서 걸으면서 했던 기억이 있음.


아무튼 이 책의 1/3은 밑줄 치면서 본 것 같다. 작가님께 미루는 사람의 심리의 이면을 깊이 파내서 이렇게 글로 옮겨 적어 주셔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미루는 자의 입장으로서 일을 착수하지 않고 미룰때 일어나는 감정은 너무 괴롭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는가, 이러다가 다 짤려서 망할거야 등등. 이 블로그 역시 내 미루기의 산물인데 늘 해야 하는 일을 하지않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쓸 에너지를 그냥 이 블로그에 쏟아 버리고 약간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내일을 기약하는 일이 많다.


마지막에 밑줄 친 두 파트만 옮겨 적어 본다.


내가 한명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어느때든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동시에 늘어져 있을 수 있고, 일을 미루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야심차게 성취해낼 수 있다면.


미루기의 거장들이 내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건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대부분 진짜, 진짜, 진짜로 어려운 일이라는 거다. 다른 나라의 언어 배우기, 그동안 겁내고 있던 프로젝트에 착수하기, 데이트하고 싶은 상대에게 말 걸기,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임무들이다. 실패와 고통, 난처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야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경우라도 유혹은 여전히 남아 일을 미루고 싶게 만든다 그럴수록 과제는 더 어려워지고, 도전 정신을 더 많이 발휘해야하고, 그러므로 더욱 흥미로워진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루기의 전문가들이 눈앞에 놓인 일에 당장 덤벼들기보다는 옷장을 정리하거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재생목록 이름을 전부 다시 붙이거나, 따개비 연구를 하며 수년을 보내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