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 조너선사프란포어(Eating Animals, 2011)
빨간책방 특집에 참여한 사람이 빨간책방 이벤트로 기증 한 책 중 이 책이 있어서 제목만 듣고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연구실에서 태어나서 처음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봤다. 이 분들은 엄격히 말하면 페스코다. 그러니까 해산물은 먹고 육지에 사는 동물은 먹지 않는다. 이분들은 프로페셔널하게 채식을 하시는 분들이고 나는 옆에서 신기하게 구경하는 입장이어서 불편함은 전혀 없었는데, 인도에서 온 힌두교 아저씨와 밥을 같이 먹기 위해 살펴보다가 우리나라 음식에는 고기베이스가 너무 많다는 걸 느끼게 되고 그걸 피하려다 보니 굉장히 불편했다. 인도아저씨는 그래도 치킨을 먹을 수 있는데도 불편함이 너무 많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까다롭게 굴지 않기 위해서는 채식은 꿈도 못 꿀 이야기이고 육식을 즐기는데다 먹는 것은 다 좋고 가뜩이나 매운 것을 못 먹어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적인데 여기에 고기까지 안 먹어요 하면 왕따 당할 것 같아서 채식을 할 생각을 할 생각조차 없었다. 더더군다나 요즈음은 좀 고쳐졌지만 소세지나 햄 없이 어떻게 밥을 먹는단 말인가!! 내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김과 햄/소세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만 있으면 또 몇 끼라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은 육식을 하지 않을 때의 건강상의 좋은 점, 육식을 하지 않아야 할 감정적인 이유(동물도 기억하고 느끼고 공감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정도를 기대하고 더 나아가 이 내용이 나의 저변에 있는 무엇인가를 건드려 줘서 고기를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면 금상첨화 일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세가지를 다 만족하지 못했다. 육식을 하지 않을 때의 건강상의 좋은 점은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항생제에 절여진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내성이 덜 생길 수 있으려나?(그러나 이건 모두가 고기를 먹지 않아야 극복 가능한 것인데,,..) 뭐 살이 찌지 않는다거나 심혈관계 질환의 개선 이런 내용은 전혀 없던 것 같다.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교양서에서 하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흘려 읽는 경향이 있어서..) 동물도 지능과 기분과 교감하는 능력이 있는데 어떻게 당신을 인지하는 동물을 먹을 수 있나요? 라고 하는 감정적인 호소는 없다. 잔혹하게 생산되는 공장식 축산의 실태에서 속이 좋아지지 않기는 하지만 이건 동물이 가지고 있는 감정에 대한 반응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결론적을 이 책을 읽고 ‘그래서 고기를 먹을거야?’ 라고 물으면 아직은 고민 중이다 라고 이야기 할 것 같다. 아직 고기를 포기했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내 감정과, 타인에게 설명해야 하는 각본이 전혀 없어서 “이 책을 읽고 충격 받아서 고기는 도저히 못 먹겠더라구요”라고 말할 수 없다. 글을 쓰면서 찾아본 몇몇 공장식 축산에 대한 동영상을 한편(3분)정도 보는 것이 책을 3시간 읽는 것 보다 더 충격적인 것 같다.
백년 전만 해도 노예제도는 당연한 것이었고 40년 전만 해도 인종우월주의 또한 당연한 것이었고, 여성차별 또한 당연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런것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비춰도 비난 받아 마땅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것 처럼 수 십년 뒤에는 공장식 축산을 하는 동물을 먹는 것이 비난 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런 시대를 맞이하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나도 공장식 축산에 대한 의문을 가지며 이것을 반대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쉽지 않다. 정말 너무 많이 고민이 된다. 이성적으로 판단 했을 때는 분명 지금 당장이라도 공장식 축산에 대해 반대를 표현하고 고기를 먹는 행위를 그만둬야 하지만, 많은 불편함과, 고기를 먹을 때 느끼는 즐거움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0년전 노예를 가진 사람이 노예도 같은 사람인 것을 인정하며 노예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노예가 없을때의 불편함 때문에 노예해방을 진작에 못한 것은 아닐런지.
책의 중간중간 육식동물의 문제뿐만 아니라 어류의 포획과정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지만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는데 이것은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다. 어류의 포획과정도 언젠가는 문제시 되어 비판 받을 항목인 것 같다.
책의 중간에는 이런 내용이 있는데, 이는 비단 식용동물을 생산하는 사람에게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실험동물을 이용하는 나에게도 몇몇 단어만 치환 시키면 정확하게 들어 맞는다.
*괄호하여 Bold로 쓴 단어는 치환시켜 본 단어이다.
농부(과학자)와 농장(실험) 동물의 윤리적 관계는 독특하다. 농부(과학자)는 음식(실험)을 위해 결국은 도살(희생)되거나, 아니면 평생 번식(관찰)을 한 다음 죽어야 할 운명으로 뽑힌 살아 있는 동물을 키워야 한다. 감정적으로 애착을 가져서도 안 되고, 거꾸로 살아 있는 동안 괜찮은 삶을 누릴 동물의 요구에 냉소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농부(과학자)는 동물을 단순한 상품(실험도구)으로 보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동물을 상품(실험도구)으로 키워야 한다.
내가 하는 행위에 있어서 더 심각한 것은 동물을 먹는 것 보다는 동물 실험과, 직접적인 동물실험이 아니더라도 동물유래의 혈청이 더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사실 몇 일 전 실험기자재 영업사원이 '사람의 혈액샘플을 구하러 다니느라 고생이 많았죠?' 뭐 이런 문구의 사람 혈청, DNA, 바이러스나 질병에 감염된 세포, 소변 등등을 인종, 나이, 성별 질병유무에 따라 다양하게 판매한다는 팜플랫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쓰는 FBS(Fetal bovine serum)도 사람이 아닐 뿐이지 잔혹하기는 마찬가지.. 나는 가끔 동물 실험하는 동종업계의 과학자가 매드사이언티스트가 아닐까 한다. 나쁜 의도를 갖고 실험 하는 것이 아님은 안다. 나 역시 내 연구에 필요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최근 심장관련 연구를 하기 위해 몇 가지 동물모델 관련 논문을 찾아 읽던 중 동물의 심장에 무리를 주기 위해서 심대동맥을 묶어서 물리적인 무리를 주거나, 수 차례 1년간 10회정도의 임신을 시켜서 심장에 무리를 주거나, 하루 90분 일주일 5번 총 4주간 쥐를 물에 빠뜨려(수영이라고 칭했다.) 운동(이라고 쓰고 고문이라고 읽는게 좋을 것 같다.)을 시키거나 하는 방법, 그리고 심장을 꺼내서 인위적으로 배지 또는 혈류를 공급해서 심박동성을 체외에서 구현하여 심장을 연구하는 방법 등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까지 10%도 공감 할 수 없는 것 같다. 다음 번에는 동물실험의 실태나 동물실험의 타당성에 관해 다루고 있는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그래도 몇 가지 동물실험을 하고 있는 과학자로서 변론을 하자면, 동물에게 최대한 안락한 시설을 제공 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이고 있으며, 살아 있는 동안은 최대한 고통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태를 살피고, 이상이 있는 동물은 재빨리 안락사를 시행한다. 이렇게 적고 있지만 이것도 궤변이기는 매 한가지 인 것 같다. 이 행위들이 나를 위한 것인지 진정으로 동물을 위한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책의 마지막은 조너선사프란포어의 할머니가 하신 말씀으로 마무리 된다.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면, 지켜야 할 것도 없는 법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