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것

끔찍함

마이토 2014. 9. 9. 22:17

이틀 동안 안 끔찍했으니까 끔찍함에 대한 글을 써 보면 될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오후시간이 되면 기분이 안 좋다라고 표현하기도 그렇고, 화가 나는 것은 절대 아니며, 그렇다고 지치는 것도 아닌데, 매우 찝찝한 기분이 들다가 못 볼걸 본 것도 아닌데 눈앞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서 끔찍한 느낌이 든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기분이 끔찍해지기 시작하면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일을 하는 시늉은 낼 수 있는데, 일의 결과가 엉망이다. 그게 노는 일이어도 마찬가지. 끔찍함은 연구실에 있으면 일어나는 걸까 싶었는데, 연구실에 있지 않았던 날에도 찾아왔다.

끔찍함의 시작은 엄청나게 실험을 했던 날이었다. 끔찍함이 들기 하루 전부터 실험을 몰아가며 했는데, 체력이 있는데도 갑자기 아무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수없이 했던 실험인데, 갑자기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은 있는데 손 끝이 거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실험실에 있기조차 힘들어져서 집에 가서 그냥 문자 그대로 들어 누워 두 시간 정도 있으니 조금 기분이 생겨서 실험을 대충 수습하고 그날을 마무리 지었던 것 같다.

물리적인 힘이나 육체적인 힘이 모자라는 것은 절대 아니고 신체 자체만을 봤을 때 문제가 전혀 없었다. 어디 아픈 것도 아니었다. 감정적으로 누군가가 나를 좌절 시키거나 화나게 하지도 않았고, 스스로에 대한 감정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날 이후부터 오후 4시 무렵에는 끔찍함이 찾아와서 제대로 된 효율적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침이면 상태가 좋고, 끔찍함이 점심 무렵에 조금씩 느껴지다가 오후가 되면 나를 사로잡아버리는 것 같다.

끔찍한 기분이 들 때 나를 살펴 보았을 때 , 내 안의 무엇인가가 없고 껍질만 남아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기분이 공허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점이 내가 생각하는 공허는 빛이 없고 텅 비어있는 공간 같은 느낌인데, 끔찍한 기분이 들 때 나의 안쪽은 해면골 같은 구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엉성한 느낌. 박자가 어긋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일상에서 좀 멀어지니 끔찍한 느낌이 들지 않는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면 끔찍한 느낌이 또 오는지 살펴보고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이게 끔찍한 느낌이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기분인지, 감정인지, 현상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