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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화와 혼란기

 자신과 동성애를 연결하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 많은 사람이 여성에게 향하는 특별한 감정 상태를 '집착'이나 '동경'이나 '우정'으로 인식합니다. 또 '있을 수 없는 이상 감정 상태'로 규정하기도 하죠. 이런 인식은 레즈비언 정체성에 관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편견을 당사자가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내면화는 곧 당사자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죠. 무엇에 관해서요? 동성에게 향하는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에 관해서요. 사회가 변태니 정신병자니 이상 성욕자니 하는 말로 동성애자를 비정상인 사람으로 딱 고정했으니,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단순하고 명쾌하고 밝고 긍정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기는 참 어렵겠죠. 이렇게 부정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종종 혼란, 거부, 회피, 자기비하, 자기혐오, 자기부정 등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이런 인식 속에서 당사자는 복잡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비정상일까?', '내가 이른바 변태라고 불리는 무리에 포함되는 걸까?', '나는 왜 그런 정상적이지 못한 욕구를 느끼는 걸까?' 다른 사람이 구성한 동성애자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자기 존재를 연결 짓지 못하면서 어떤 부조화를 감지하고, 정체성을 둘러싼 혼란의 시기를 보내는 겁니다.

 

인식과 수용기

 부조화와 혼란기에 동성인 사람에게 향하는 마음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사람이 극단의 부정과 회피로 일관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게 왠일 입니까! 같은 마음이 또 다시 이는 겁니다. 시간이 흐르고 노력했고,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는데, 동성인 다른 사람한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거죠. 또는 실제 교재를 하게 되거나 말입니다. 이른바 '연애' 와 '이별'이라는 것을 반복 경험하는 경우도 포함되겠죠. 이런 반복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동성애자인가'하고 말이죠. 이게 곧 긍정적인 인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부정적인 인식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내가 그 더러운 변태 성욕자라는 말인가!' 뭐, 이런 식으로요. 이런 과정을 반복 경험하면 인식의 변화는 물론 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 자신의 동성애자 정체성을 수용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아! 내가 동성애자구나!'

 

긍정과 통합기

 자기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큰 궁금증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 새로운 정체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존재와 삶을 설명해줄 언어를, 사람을, 문화를 찾기 마련입니다.(물론 절대로 관련 정보나 커뮤니티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보를 수집하고 접하게 되는 거죠. 그 정보는 문서일 수도 있고, 인터넷에서 만나느 사람일 수도 있죠. 정보를 만나면서 동성애자의 삶을 설명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나게 될 겁니다. 자기 삶을 다시 한 번 새롭게 구성할 수 있게 돕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이런 사실을 접할 수 있겠죠. 많은 의문을 품을 테고요.

 

무단으로 가져왔지만 누군가가 이걸 보고 이 책을 찾아 읽었으면 정말 좋겠다. 어떤 외롭다고 느끼고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사회과학적으로 사람의 인식을 설명하는 능력이 거의 제로여서 이렇게 누군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 놓은걸 보면 사회과학자들은 천재임이 틀림없다.

십대 중후반을 부조화와 혼란기 속에서 지내다가 막상 가장 활발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행동 할 수 있었을 시기인 대학 학부생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인식조차 없었다. 그때는 혼자 놀 거리가 너무 많았던것 같다. 그리고 최근 일년간 다시 문제의식이 얼굴을 들게 되었고, 인식하며 '이게 내 삶이다'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이렇게 책을 읽고 자료를 찾고 있는걸 보면 이제 통합기가 오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