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의 마지만 연인이 빌헤이스라는 사실이 올리버 색스 사망 무렵에 (내게) 알려 졌었는데, 그 사실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다. 먼저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빌헤이스가 어떻게 뉴욕에 갔을지, 다음으로는 빌 헤이스랑 같이 살던 스티브는 어떻게 되었나 같은 <불면증과의 동침> 이후의 이야기들.. 빌 헤이스와 올리버 색스와의 관계를 알고나서 올리버 색스의 회고록을 읽을때 빌 헤이스 지분을 기대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적어서 실망 했던 기억도 있었는데, 이 책은 내가 궁금해 했던 부분, 그러니까 <불면증과의 동침>이후의 시간과 올리버 색스와의 시간을 그린 책이었다 (바로 내가 바라던!!).


뉴욕은 너무 정신 없어서 살고 싶은 도시는 딱히 아니었는데, 요즘처럼 한가한 작은 도시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되풀이하고 있자니 차라리 큰 노력 없이 마음 내킬 때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는 대도시가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빌은 뉴욕에 완전히 매료된것 같아 보인다. 빌 헤이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쫓아 읽어보고 싶음.


요즘은 영문이건 국문이건 사전을 거의 찾아 보지 않고, 전후 맥락을 보고 대충 짐작 하고 말아 버린다. 그런데 올리버는 늘 사전과 함께 했다고 한다. 사전을 하나 살까 싶은 충동을 느꼈을정도로 단어의 뜻 하나하나를 파악 하는 특징을 잘 묘사해 주었다. 그래서 나도 책 읽으면서 정확히 모르는 단어는 이례적으로 사전을 찾아 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지소사: 이름을 작은 개념으로 부르는 것, 예를들면 윌리엄을 빌이라고 부르는

일람표: 순서가 정해진 항목의 모임

리비도: 태어나서 발달하는 욕구

옹골지다: 속이 실속있게 꽉 차있는

엽권련: 지권련은 잎을 썰어서 만 시가라면 여송연이나 잎권련 엽권련은 잎을 썰지 않고 만 시가...

희색: 기뻐하는 얼굴 빛

기시감: 데자뷰, 해본적 없는 일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

개평: 노름이나 내기에서 남이 가지게 된 몫에서 조금 얻어 가지는 공것, 원문에서는 tip이었음


마지막에 올리버가 죽은날 집에 돌아 간뒤 깊은 잠을 자고 알리네 가게에 들러 올리버가 오늘 죽었다고 전달 할때 올리버가 정말 죽은걸 선고 하는 느낌에 눈물이 났다.


빌이 48살에 올리버를 만나 마지막 올리버 가는 길을 잘 보살펴 준 것 같은데, 올리버 할아버지 복도 많았지 싶다. 나도 올리버 처럼 한평생 일에 몰두하며 살다가 마지막에 단 한사람이라도 내 곁에 머물러 있고, 마지막 인생을 스스로 어느 정도 정리 해 두고 저물 수 있다면 그보다도 더 좋은 복도 없을것 같다.


산다는것과 머문다는건 이제 큰 차이가 있는 단어가 된 것 같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무심결에 어느 도시에서 살고 싶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어느곳에도 '살고'싶지 않다는 답을 들었는데, 그때의 질문을 정정해서 다시 한다면 이제는 어느 도시에서 머물고 싶냐고 물어 보는 것이 더 맞을것 같다. 빌은 아직은 뉴욕에 더 머물것이라고 한다.


빌 헤이스의 블로그

billhayes.com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중 1부.

1부만 보고 끝내야지 했는데 마지막 한줄이 충격적 이어서.. 2부도 읽고 있는 중이다.


릴라를 보면서 자신의 뛰어남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걸 감추며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떠올라서 계속 그 사람에 이입을 하면서 안타까워 하면서 읽었다. 글도 시원시원해서 서사를 즐기며 읽고 있는 중.


4부까지 큰 이변이 없는이상 계속 보지 않을까 싶다.


한가지 아쉬운건 나폴리 이야기여서 핏자집에 갔다는 마치 국밥집에서 다들 밥을 먹고 헤어졌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좀 더 자세하게 서술 해 줬으면 좋겠다. 예를들면 핏자 한판을 시켜서 같이 간 넷이서 나눠 먹었다던가 아니면 다들 배가 고파서 1인 1핏자를 했다던가, 안토니오가 친절하게 피클을 가져다 주었다 뭐 이런 내용으로 이탈리아 핏자 문화를 좀 더 자세하게 그려줬으면 좋겠다. ㅋㅋㅋㅋ




마지막장은 좀 무시무시 했다. 정말 지금 이 시점이 사피엔스의 종말을 맞이 하고 있는 시점이 아닐까 싶었고, 그래서 다음 세대를 생산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을까, 굳이 구 버전의 동물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음.


마지막 문단을 옮겨 메모 해 둔다.


 우리는 머지 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는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하고 있는데 그 패턴에 대한 이야기여서 옮겨 본다.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상류계급은 자신들이 하류계급보다 똑똑하고 강건하며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속였다. 사실 가난한 농부에게서 태어난 아기의 지능은 황태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의학적 능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상류계층의 허세가 머지않아 객관적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과학소설이 아니다.




세계사나 세계지리에 대한 지식이 정말 없던 나로서는 재미있게 전반적으로 훑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전자책으로 읽으면 그때그때 기록하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어떤 문장이나 부분이 좋다고 남기기가 쉽지 않은 단점이 있네..


이번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 겸 해서 찾아 읽어 봤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남아있는 나날') 

이렇다한 반전도 없고 잔잔하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루스-캐시-토니의 관계에서 캐시가 루시의 비언어적 행동을 이야기하는 점에서 어렴풋하게 존재하던 생각들이 글로 표현이 되어 있는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도 함께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의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SF 라고해서 영화 아일랜드 같은 것일까 싶었는데, SF라는 틀은 과학자가 어떤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수많은 조건을 통제하고 비교하고 싶은 요소만 바꿀수 있게 실험을 세팅 하듯이 사람의 마음을 서술하기 위해서 장기 이식을 위한 인간이라는 요소 셋팅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테드창의 소설과는 그런의미에서 다르게 쓰인 SF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