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밀란 쿤데라 전집 01권

<La plaisanterie>,  Milan Kundera

2판 2쇄 - 방미경 옮김


p412

<6부 코스트카>

 불현듯 나는, 내가 이른바 그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실은 나 자신의 인간적 책무들을 면하기 위한 핑계로 내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자들이 무섭다. 그들의 온기가 두렵다. 끊임없이 곁에 있는 것이 겁난다. 이웃 도시의 그 여선생과 방 두 개짜리 집을 계속 나누어 쓴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것과 똑같이 루치에와 같이 산다는 생각을 했을 때 겁이 났던 것이다.


p463

<7부 루드비크, 헬레나, 야로슬라프>

 내 아들. 가장 가까운 존재. 그애가 내 앞에 있는데, 나는 정말 그애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모르면서 대체 내가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그것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내가 이 세상에 대체 무엇을 확신한단 말인가?


p490

<7부 루드비크, 헬레나, 야로슬라프>

 뭐라고 지난 사흘만? 내 인생 전체가 늘 그림자들로 가득 했다. 그리고 현재라는 것은 어디 자리할 곳도 거의 없을 정도다. 자동으로 앞으로 움직여 가는 보도(시간)와 그 위에서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나)을 머리속에 그려 본다. 그런데 그 보도는 나보다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달려가는 방향과 반대편에 있는 목적지로 서서히 나를 데려 가는 것이다. 이 목적지,(뒤편에 있는 희한한 목적지!) 그것은 정치 재판이라는 과거, 손들이 일제히 올라가던 그 강당이라는 과거, 검정 표지 병사들과 루치에라는 과거, 내가 여전히 홀려 있는 과거, 내가 해독하고, 해결하고, 매듭을 풀어 보려 무진 애를 쓰는 과거, 그리고 나로 하여금 사람 살듯이, 그렇게 앞을 보고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과거, 그런 과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