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의 최대 단점은 책의 물성을 느낄 수 없다. 이번에 특히 책을 감촉으로 느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대신 오늘의 끈적하고 바람부는 날씨를 연관해서 기억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동시대 비슷한 나이대에서 비슷한 시절을 겪은 작가의 책이 이렇게나 좋은 거구나 싶은 생각을 올해 들어서 읽은 책들로 여러번 하게 되는데 이번 책도 역시나 그랬다.
아침에 눈뜨자 침대에 누워서 이번 주말엔 누구의 책을 읽어 볼까 하며 책을 골라 봤는데 평점이 별 하나와 다섯을 오가는 책 이었다. 별 하나의 후기를 편리하게 살펴 보는데 그들의 악의적인 별 하나는 반대로 생각 하면 아주 유용하다. 이번책도 그런의미에서 별 하나의 악의적인 후기가 참 도움이 되었다. 고마워요 별 하나. 나는 별 다섯개 만점에 별 여섯개이고.
누군가에게 무해하기위해 노력 할 때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저 사람 왜 사나 싶은데,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살아 간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인걸까 싶다.
나중에 기억을 더 잘하고 싶어서 소설의 내용을 정리해본다.
<그 여름> 고등학교 2학년 때 운동장에서 수이가 찬 공에 맞아 안경이 부러진것이 인연이 된 이경과의 이야기다. 소설에서 한국의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를 본적이 있었던가 싶은데 그래서 좋았지. 축구를 하다가 부상으로 축구를 관두고 하는 수이의 직업이 차 정비사인것이 깨알같이 좋았다. 이경이 수이에게 위선적으로 헤어지자는 흔한 거짓말을 하는 장면에서 그걸 받아들이는 수이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안되었다.
<601, 602> 광명의 아파트에서 사는 두 여자 어린이의 이야기인데, 집에서 오빠와 아빠에게 맞고 엄마는 이를 그저 묵인하는 환경에서 사는 효진이의 출신이 칠곡인것이 이번의 깨알 포인트였다. 하필 칠곡이고 효진의 가족이 다시 돌아가는 계기는 칠곡에서 주유소를 하게 되었다는 요소가 메타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주영이의 엄마는 아들을 결국 가지기 위해 일을 그만둔것에는 이제 분노하기 보다는 체념하는것이 더 빠르지만 마음에 쌓이는 불편한 분노는 어쩔수가 없다. 나만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것 정도가 위안이라면 위안.
<지나가는 밤> 주희와 윤희 자매의 이야기이다. 윤희가 미국에서 느낀 고독함이 내가 바로 어제 느꼈던 고독함과 비슷해서 이번에도 나만 그런것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종종 어떤 고독함을 견디지 못해서 그 고독함 보다도 더 질이 나빠보이는 관계를 선택하고 부서지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그 선택에 의문을 가졌는데, 한편으로는 그 고독함을 견디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어딘가 부서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러나 저러나 인간은 부서져'와 같은 냉소.
<모래로 지은 집> 통신 친구 세명 = 모래, 공무, 나의 이야기
공무는 어릴때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옆집 사람의 아내에 대한 학대를 보고나서 사랑이란걸 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던것 같다. 그래서 모래의 신호에도 애써 모른척 하며 모래를 사랑 하는것을 유보 했다. 모래는 연약한 사람인데 공무도, 나도 사라지고 나서 또다른 연약한 선택으로 캘리포니아행을 선택 했다.
<고백> 사제가 된 종은이가 마지막으로 사겼던 미주의 고등학교 때 이야기.
세명의 친구 관계인 미주, 주나, 진희의 이야기. 진희가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 하자 말로 상처를 준 주나, 표정으로 상처를 준 미주.. 말이 더 무서운것일까 표정이 더 무서운 것일까 아무튼 둘다 그 힘은 너무 강했기에 진희는 결국 유서도 없이 자살하고 만다. 왜 레즈비언은 자살하는 것인가요 흑흑
<손길> 이 부분은 처음 문장을 읽고 숨이 턱 막혔다. 아마 이름 때문이겠지.
부모님 모두 생업으로 바쁘게 되자 숙모가 나를 돌봐주게 되었는데, 숙모는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그 자유로움을 주인공게도 어느정도 알려 주고 싶어했던것 같다. 이제는 숙모 같은 나이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나도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자유로우면서, 초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알려주고 싶다.
<아치디에서> 랄로라는 브라질 방탕아가 아일랜드 사람을 무작정 찾아서 아일랜드로 떠났다가 화산폭발로 인한 비행기 연착으로 일정기간 아일랜드에 눌러 붙어 앉게 되면서 시골에 일하러 갔다가 만난 한국인 하민과의 이야기. 하민은 한국의 병원에서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였는데, 어느날 사람의 영혼이 아니게 된 자신을 발견, 가족의 착취에 신물이 난 나머지 아일랜드 어느 시골마을에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