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제로 알려진 마약과 같은 약물로 사용 되는 클로랄하이드레이트에서 시작해서 머크-독일-경제-정치가 다 얽혀 있는것을 다양한 각도에서 잘 요약해 주었다. 책은 실제로 짧은 내용이었는데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들이 함축적이어서, 생각할 지점이 많았다. 사회적 이야기를 좀 더 읽고 싶으면 여기에 나온 참고문헌을 찾아 보면 될것 같다.


중간에 피임약으로 사용되는 프로게스테론 유도체 이야기가 몹시 흥미로웠는데 처음에는 이러한 호르몬의 남용은 몸의 신호체계를 교란 시키니 사용하지 않는게 좋지 않냐는 반 페미니즘, 그러니까 백래시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그에 따른 부작용을 거듭 강조하며, 몸을 지배하기 위해 몸을 지배하는 약물에 의존하는건 일종의 마약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주장이 흥미로웠고 어느정도 설득당한것 같다. 백래시는 아니었다.


마무리는 조금 나로서는 흥미로운 주제였지만 조금 붕뜬 느낌이 들었는데, 흥분이라는 단어가 개인에게 사용 될때랑, 집단, 군중에게 사용 되는 의미를 다시 생각 해 볼 수 있었다.


아무튼 모르는 분야여서 재미있었어, 내용도 짧으니 조만간 다시 읽어보고 싶다.


정치와 경제를 뗼 수 없다는 것과

오랜만에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기에 적당했다.


책을 다 읽고 알았는데 이 작가가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초반의 기 롤랑이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과정에서 부유한 사람이 내가 아닐까 싶은 희망과, 그게 아니라 말 기수 였다는 사람이었다는것을 알고 부터는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수십년간 살던 나를 잊었고 그것을 찾아 가는게 매력적이다.


저자의 이름은 Axel Lindén, 원제는 Fårdagboken

원제와 가까운 번역은 양 일기라고 한다. 

영문 번역 제목은 On Sheep: Diary of a Swedish Shepherd.


한국어 번역제목도 마음에 든다. 초반부 일기의 마지막 구절인데 (첫 여름 마지막 일기). 양을 치는 사람으로서 양에게 드는 감정이 잘 드러났다. 나도 동물 실험을 할때면 쥐의 까만 눈동자를 보며 귀여워 하다가 막상 실험을 할때는 순간적으로 감정을 가다듬고 처치를 하는데 이렇게 되기까지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내가 미숙해서 동물에게 전해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행위를 하는게 많이 괴로웠는데, 이제는 신속하게 실험을 함으로서 서로 괴로운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위안이 된다. 일기 후반의 한 구절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짓눌려 숨가빠 하던 시점에서 위안이 되었다.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최대한 살아갈 뿐이다."


도시에서 문학을 공부하다가 목장으로 돌아간 저자의 초반 목장 생활의 고달픔과,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달픔으로 인해 발생하는 분노와 좌절이 느껴지는데 마지막에는 또 능숙하게 하는 자신을 돌아 보며 뿌듯해 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는데 수많은 일들이 미숙함-미숙함에서 오는 좌절과 분노-만족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한편으로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이 여유롭고 제법 목가적으로 느껴 졌는데, 저자는 목장에 오기 전 부터 이런 사람이었을지 아니면 목장에서 살게 되면서 이런 사람으로 변화한건지 호기심이 생긴다.


양 떼에 막혀 차가 꼼짝달싹 못하는 상황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대학교 1-2학년 무렵에 짝궁이었던 진수가 학교에 오지 않아서 연락을 하니 버스에서 졸다가 학교를 지나쳐서 청도에 왔는데 염소가 도로에 가만히 서 있어서 버스가 지금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던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익숙해지고 더이상 새로운것이 없다고 느낄때를 경계하고 싶다는 일기가 있었던것 같은데 그 구절이 어디였는지 찾기가 힘들다. 다음에 다시 읽으면 이 부분을 좀더 곱씹어보며 읽어 보고 싶다.


전자책의 최대 단점은 책의 물성을 느낄 수 없다. 이번에 특히 책을 감촉으로 느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대신 오늘의 끈적하고 바람부는 날씨를 연관해서 기억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동시대 비슷한 나이대에서 비슷한 시절을 겪은 작가의 책이 이렇게나 좋은 거구나 싶은 생각을 올해 들어서 읽은 책들로 여러번 하게 되는데 이번 책도 역시나 그랬다.


아침에 눈뜨자 침대에 누워서 이번 주말엔 누구의 책을 읽어 볼까 하며 책을 골라 봤는데 평점이 별 하나와 다섯을 오가는 책 이었다. 별 하나의 후기를 편리하게 살펴 보는데 그들의 악의적인 별 하나는 반대로 생각 하면 아주 유용하다. 이번책도 그런의미에서 별 하나의 악의적인 후기가 참 도움이 되었다. 고마워요 별 하나. 나는 별 다섯개 만점에 별 여섯개이고.


누군가에게 무해하기위해 노력 할 때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저 사람 왜 사나 싶은데,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살아 간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인걸까 싶다.



나중에 기억을 더 잘하고 싶어서 소설의 내용을 정리해본다.


<그 여름> 고등학교 2학년 때 운동장에서 수이가 찬 공에 맞아 안경이 부러진것이 인연이 된 이경과의 이야기다. 소설에서 한국의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를 본적이 있었던가 싶은데 그래서 좋았지. 축구를 하다가 부상으로 축구를 관두고 하는 수이의 직업이 차 정비사인것이 깨알같이 좋았다. 이경이 수이에게 위선적으로 헤어지자는 흔한 거짓말을 하는 장면에서 그걸 받아들이는 수이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안되었다.


<601, 602> 광명의 아파트에서 사는 두 여자 어린이의 이야기인데, 집에서 오빠와 아빠에게 맞고 엄마는 이를 그저 묵인하는 환경에서 사는 효진이의 출신이 칠곡인것이 이번의 깨알 포인트였다. 하필 칠곡이고 효진의 가족이 다시 돌아가는 계기는 칠곡에서 주유소를 하게 되었다는 요소가 메타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주영이의 엄마는 아들을 결국 가지기 위해 일을 그만둔것에는 이제 분노하기 보다는 체념하는것이 더 빠르지만 마음에 쌓이는 불편한 분노는 어쩔수가 없다. 나만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것 정도가 위안이라면 위안.


<지나가는 밤> 주희와 윤희 자매의 이야기이다. 윤희가 미국에서 느낀 고독함이 내가 바로 어제 느꼈던 고독함과 비슷해서 이번에도 나만 그런것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종종 어떤 고독함을 견디지 못해서 그 고독함 보다도 더 질이 나빠보이는 관계를 선택하고 부서지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그 선택에 의문을 가졌는데, 한편으로는 그 고독함을 견디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어딘가 부서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러나 저러나 인간은 부서져'와 같은 냉소.


<모래로 지은 집> 통신 친구 세명 = 모래, 공무, 나의 이야기

공무는 어릴때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옆집 사람의 아내에 대한 학대를 보고나서 사랑이란걸 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던것 같다. 그래서 모래의 신호에도 애써 모른척 하며 모래를 사랑 하는것을 유보 했다. 모래는 연약한 사람인데 공무도, 나도 사라지고 나서 또다른 연약한 선택으로 캘리포니아행을 선택 했다.


<고백> 사제가 된 종은이가 마지막으로 사겼던 미주의 고등학교 때 이야기.

세명의 친구 관계인 미주, 주나, 진희의 이야기. 진희가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 하자 말로 상처를 준 주나, 표정으로 상처를 준 미주.. 말이 더 무서운것일까 표정이 더 무서운 것일까 아무튼 둘다 그 힘은 너무 강했기에 진희는 결국 유서도 없이 자살하고 만다. 왜 레즈비언은 자살하는 것인가요 흑흑 


<손길> 이 부분은 처음 문장을 읽고 숨이 턱 막혔다. 아마 이름 때문이겠지.

부모님 모두 생업으로 바쁘게 되자 숙모가 나를 돌봐주게 되었는데, 숙모는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그 자유로움을 주인공게도 어느정도 알려 주고 싶어했던것 같다. 이제는 숙모 같은 나이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나도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자유로우면서, 초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알려주고 싶다.


<아치디에서> 랄로라는 브라질 방탕아가 아일랜드 사람을 무작정 찾아서 아일랜드로 떠났다가 화산폭발로 인한 비행기 연착으로 일정기간 아일랜드에 눌러 붙어 앉게 되면서 시골에 일하러 갔다가 만난 한국인 하민과의 이야기. 하민은 한국의 병원에서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였는데, 어느날 사람의 영혼이 아니게 된 자신을 발견, 가족의 착취에 신물이 난 나머지 아일랜드 어느 시골마을에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